내가 못난 탓에 형편없이 살게 되었다는 생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발상이 유별나게 다가오는 것은 이제 그런 생각이 어느 한 사람의 변덕스런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의 삶을 규제하고 조직하는 원리로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희망드림프로젝트가 말하는 복지정책은 희망을 품고 자신을 보살필 줄 아는 개인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복지정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주도적인 창의적 학생을 내세우는 교육정책이나 자기의 인적자산 혹은 경력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라는 고용정책이나 모두 다같이 자신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개인을 겨냥한다. 게다가 자존하고 자립하고 자활하라는 윤리적인 다그침 속에는 네 삶 밖의 세계에 어떤 허튼 소리도 하지 말라는 위협적인 목소리가 깔려 있다. 네 스스로 힘껏 살아보라는 말 속에는 그리고 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속삭임 속에는, 사실은 절망과 분노는 내색조차 하지 말라는 협박이 숨어있는 셈이다. 만약 그런 소리를 늘어놓는다면 우리는 봇물처럼 쏟아지는 자신에 대한 진단과 힐난, 처방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악인보다 더 불편하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제 앞가림을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칭얼대고 투덜대며 곧잘 분을 터뜨리는 사람보다 우리가 더 성가시게 여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p8-9. 책을 펴내며 중.
1996년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한 노동 및 개인의 책임에 관한 법은 그때까지의 '웰페어(welfare)'와 '사회보장의 지원'을 받던 생활방식을 '워크페어(workfare)'로 전환시켰다. 이 법은 죄의식을 느끼는 실업자에게 '다시 일할 맛이 나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보다 떨어지고 보수도 적은 일자리를 거절하면 처벌을 받게 돼 있다. 국가에서 주는 수당을 받으려면 조건이 어떠하든 간에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 결국 국가가 빈곤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빈곤층이 국가를 위해 의무를 지는 형국이 된 것이다.
르몽드 세계사, p133, '가난가의 전쟁인가, 가난한 자들과의 전쟁인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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